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닌그라드 공방전 (문단 편집) === 생명의 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197046a4790b254c3a899d5a71152417bdd08d0580ca03e7949d38276f3399ea.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AN_archive_310_Foodstuffs_for_Leningrad.jpg|width=100%]]}}} || >그래도 언제나 태양은 뜬다! >---- >'생명의 길' 기념비 中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라도가 호수]](Ла́дожское о́зеро, 줄여서 Ла́дога)는 독일군과 핀란드군에게 완전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다른 지역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라도가 호수 얼음 위에 가설되었던 통로는 생명의 길(Дорога жизни)이라 불리며 문자 그대로 레닌그라드의 '''생명선''' 역할을 하였다. 이 길을 통해 이를 통해 1600만 톤의 물자가 공급되었으며, 시민 137만여 명이 대피할 수 있었다. 레닌그라드 전선을 지키기 위해 병력과 군수품이 보충될 수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라도가 호수의 수송로를 통한 이 거대하고 처절했던 작전에서 운전사들은 짧게는 35km, 길게는 무려 '''135km'''에 이르는 거리를 수송해야 했는데, 소련군 운전병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자원해 레닌그라드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 물자를 수송했다. 독일군과 핀란드군이 라도가 호수변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있어서 한정된 항구밖에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 이 때 사용되었던 오시노베츠(Осиновец) 항구에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기리는 Дорога жизни를 이름으로 하는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이 생명의 길은 역시 너무도 많은 생명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HTUwuxZzM8)]}}} || || 영어 영상 || 위 영상에 나오듯이 물자를 트럭에 최대한 조금씩 싣고 얼어붙은 호수 위를 기어가다시피 느릿느릿 가고, 오면서는 피난민을 태운 채로 그 짓을 왕복으로 수행해야 했는데, 이를 감지한 독일 공군과 포병은 '''얼음판'''에다 화력을 쏟아부었고 이에 얼음이 깨져 호수 밑으로 가라앉는 차량이 부지기수였다. 결국 야전병원, 베이스캠프 하나도 부담스러운 호수 위에 소련군의 방어선과 대공진지가 펼쳐지는 등 얼음판의 부담을 늘렸다. 게다가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고 해도 잘못해서 얇은 곳을 밟으면 그대로 죽음이었다. 트럭 운전사들은 이런 역경 속에도 시민들을 살리고 레닌그라드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얼어붙은 호수를 주야를 가리지 않고 오갔다. 이들의 분투 또한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묘사한 군가 '라도가 호수에 대한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있다.[[https://youtu.be/peHg-Z53YwU|남성 베이스 솔로 버전 듣기]] 군가라고는 하지만 거의 레닌그라드의 민중가요 비슷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모스크바 방위군 행진곡]]의 레닌그라드 버전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아래 동영상에서도 퍼레이드가 끝나고 연주되며, 후렴구에 Дорога жизни(생명의 길)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https://youtu.be/bWUvdVPT3O0?t=50|레닌그라드 해방 75주년 기념 퍼레이드]] 사람들이 무작정 트럭 운전사들을 비과학적으로 사지로 몰아넣은 뒤 운에 맡긴 것은 아니었다. 라도가 호수 수송은 [[최적화]]를 전공한 [[수리경제학]]자들이 참전한 군사 작전이었다. 30대 대학 교수였던 레오니트 칸토로비치가 생명의 길의 안전 문제를 총괄하였다. 기온, 얼음의 두께를 측정한 뒤 자동차들 사이의 최적의 거리를 계산했다. 너무 짧은 간격으로 많은 차량이 다니면 얼음이 깨져서 차량이 가라앉을 것이고 너무 긴 간격으로 다니면 물자를 충분히 수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칸토로비치는 얼음길을 지나는 차량들 사이를 직접 오가며 얼음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https://eiec.kdi.re.kr/publish/archive/click/view.jsp?fcode=00002000110000100006&idx=1408|관련 내용]] 그는 이 업적으로 레닌그라드 수호 훈장을 받았으며 종전 후에도 최적화 연구를 계속해 197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